담임목사 목회서신
칼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지, 한국기독공보사로부터 니케아-콘스탄티노플공의회 1700주년 기념 기고문을 청탁받았습니다. 주제는 교회론이었고, 교회론 안에서도, 1700년 교회론의 토대가 된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에 관한 것을 부탁받았습니다. 니케아신조에서 시작된 이 교회론은 워낙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재해석되어야 할 주제이기에 4,000자 내외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 적는다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봤습니다. 교회가 쉽지 않은 역사적 터널을 지나고 있는 때이기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다시금 곱씹어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우리의 시절을 걸어가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 고백하는가?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 신앙고백과 교회론
김영근 박사, 장신대 조직신학 겸임교수, 교회론 전공, 대구 만민교회 담임목사
바른 교회론을 가지는 것은 본질적 과제
교회가 바른 교회론을 가지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과제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 교회의 위기는 교회론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 교회가 성서적, 신학적으로 바른 교회론을 가질 때, 시대 정신이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전진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급격한 시대정신의 변화, 포스트모던과 디지털 시대의 출현과 함께 다양한 교회가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교파와 교단, 그리고 교회들이 세워져 있지만, 모든 교회가 한결같이 질문하고 고백해야 할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바로 “우리는 어떤 교회를 고백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모든 교회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하고, 질문에 대한 바른 응답과 고백 위에 세워져야만 한다. 기독교 역사는 수많은 위기와 위협 앞에서도 바른 교회에 대한 고백 위에 세워져 온 역사였고, 그 고백의 뿌리는 1,700년 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안에 담겨 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모든 교회론의 시금석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We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교회의 본질을 표현하는 네 가지 표식(marks)이었고, 교회를 규정하는 근본적인 진술이요 시금석(試金石)이었다. 시대에 따라 이 고백에 몇 가지를 더하면서 교회를 더 잘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긴 했지만, 이 네 가지 교회의 표지는 모든 교회론의 근본 토대가 되어왔다. 예컨대 루터는 교회의 일곱 가지 속성을 들어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의 설교, 올바른 세례 집행, 올바른 성찬 형태, 열쇠의 권한, 교회 봉사자들의 올바른 부름과 안수, 모국어로 이루어지는 기도와 찬송, 그리고 고난과 박해를 교회의 표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신앙고백은 항상 고전적인 네 가지 속성을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네 가지 표지를 신실하게 기억하면서도, 오늘 우리 시대 정신에 응답할 수 있는 신학적 해석에 대한 여지와 자유, 그리고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네 가지 교회의 표지를 더욱 충실하게 고백하고 재해석해 나갈 때, 이 표지들이 오늘 우리 신앙을 살아있게 만들며, 교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살아있는 고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네 가지 교회의 표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하나의 교회
교회의 실존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의하면, 교회는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한스 큉은 “하나의 구원 사건과 하나의 복음에서 유래한 교회는 제자와 증인, 섬기는 자들로 구성된 하나의 공동체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에클레시아, 하나의 하나님 백성, 한 그리스도의 몸, 한 성령의 피조물이다. 이것이 성서의 증언이다.
이처럼 모든 교회가 하나의 교회라는 근본적 고백은 교회 그 자체에 기인하지 않는다. 교회의 하나 됨과 통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통일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세례를 받고, 모든 자들을 하나 되게 하시는 성만찬에 참여하며,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는 하나이다. 영광에 대한 희망도 하나이며, 경험된 사랑도 하나이며, 세계에 대한 봉사도 하나다. 즉 교회는 하나로 존재한다.
몰트만은 교회의 일치를 ‘자유 속의 일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교회 안에서 그 누구도 통제되거나 지배 세력에 순응할 것을 강요받을 수 없다는 것과 모든 사람의 은사와 임무, 약점과 장애가 용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교회를 고백하는 교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와 일치 속의 다양성의 토대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일치된 힘으로 갈등과 분열, 억압 많은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친교와 평화를 이루어나가야만 한다.
거룩한 교회
이 땅의 교회와 믿는 이들의 삶에서 죄와 부패의 모습을 마주하고 절망하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담대하게 거룩한 교회를 고백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거룩한 교회에 대한 고백의 기초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땅의 교회나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를 구별하며,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 칭하시고, 성화시키며, 성자들의 공동체를 세우신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교회 그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런 이해 위에서 몰트만은 “교회는 스스로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다.”라고 말한다. 성도들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는 항상 죄인들의 공동체(communio peccatorum)이기도 하며, 거룩하게 된 교회는 항상 죄에 빠진 교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죄 가운데 있는 존재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한편 하나님의 사죄 안에서 거룩한 존재로도 인식해야만 한다.
칼 바르트는 교회를 일컬어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을 반사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는데, 거룩한 교회는 과거의 죄책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하며, 미래를 향해 전향적 자세를 가진 교회라고 설명한다. 즉 거룩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할 교회이기도 하다.
보편적 교회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결된 교회는 세상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교회는 세상의 땅끝까지(행 1:8), 그리고 세상의 끝날까지(마 28:20) 세계 선교를 수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에 참여하게 된다. 교회의 사명은 모든 시간, 모든 공간을 포함하는 보편적 사명을 가진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회는 계급, 인종, 지역의 차이가 없는 곳이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는 어떤 인간도, 피조물의 어떤 부분도 포기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바라보며 조망하는 보편적 공동체로 존재한다.
사도적 교회
교회의 사도적 증언을 통해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가 증언된다. 다른 세 가지 속성이 영원한 속성이라면 사도적 속성은 이 세상 역사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교회는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메시아적인 파송을 받은 공동체이다. 사도적 교회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다스리는 교회를 의미한다. 또한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도들의 정신이 흘러가는 교회이다. 즉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교훈,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가 사도적 교회이다.
몰트만은 주저(主著)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에서 고난 속의 사도직을 말한다. 사도직의 계승은 복음의 계승이며, 복음의 계승은 불가피하게 시련과 저항, 고통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사도적 계승은 그리스도의 수난도 계승해야만 한다. 영광만을 바라며 영광에 취한 교회는 사도적 교회라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려는 교회는 사도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도적 증언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갖는 오늘을 위한 함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교회의 네 가지 표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토대로 삼는다. 먼저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존하는 교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서서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희망을 선포하는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방향성을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며 헌신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는 하나이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모든 것 가운데 충만으로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보내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교회 스스로가 일치와 연합, 거룩함을 이루는 교회, 세상 전체와 연결되고, 세상을 위해 보냄을 받은 교회, 즉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로 확인되어야만 한다. 이 네 가지 표지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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