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목회서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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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공보 네 번째 칼럼의 제목은 "진심어린, 진심으로" 이다. 우리는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작은 고민을 적어보았다.
지난 목요일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교회를 방문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의 선생님'이신 스승의 방문이었다. 선생님은 필자의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고, 영어를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학생들과 함께 기독교 동아리를 만들고 신앙을 지도해주셨다. 동아리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이자 신나는 도전이었다. 여름방학에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엽서를 받았었다.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린 제자의 방학생활을 격려하시는 내용이었고, 선생님께서 친필로 쓰신 엽서라 감명이 깊었다. 마침 장마철이었기에 물기를 머금고 번져있던 선생님의 글씨가 기억에 선명하다. 그 엽서는 진심 어린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신학교 진학을 희망하던 제자에게 선생님은 한마디 건네셨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려거든 제대로 해야 한다." 그 말씀의 의미를 어린 고등학생이 다 헤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어린 제자의 마음속에 새겨졌고, 살아오는 동안 그 의미를 거듭 묻는 화두가 되었다. '제대로 했을까?' '제대로 하고는 있는 것일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 후 이민 목회를 떠나는 길에 아내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뵈었고, 수년이 흘러 이민 목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인사를 드렸다. 한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모습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은 '나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한 교회의 원로장로님이시지만, 필자는 '선생님'으로 불러드리는 것을 좋아하고, 선생님은 부족한 제자를 곡진하게 '목사님'이라고 부르신다.
최근에 선생님은 160일 정도 지중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신 후 지중해 연안에 대한 인문학 기행 보고인 '지중해, 삶을 품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셨고, 책의 추천사를 부족한 제자인 필자에게 부탁하셨다. 지난 목요일 목양실에 찾아오셨던 날 선생님은 제자가 드린 추천사가 담기고, 선생님의 진심이 빼곡하게 새겨진 그 소중한 책을 전해주셨다.
진심 어린 목회를 하고, 진심으로 사는 것은 무거운 어떤 것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필자에게 또 한 분의 목회 스승이셨다. 어머니께서는 목회와 관련해서 아들에게 한마디 말씀을 남기셨다. "교우들을 편애하지 말고, 똑같이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셨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 같지만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목회하면 할수록 이 말씀도 무겁기는 매한가지 말씀이다. '사랑했을까?'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할 수는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올해 100세이신 집사님께 심방을 다녀왔다. 필자의 부임 당시 88세셨던 집사님의 마음과 모습은 고우셨고, 말씀에는 늘 온기가 가득하셨다. 언젠가 울산 바닷가로 경로 여행을 가셨을 때는 어린 소녀처럼 가슴 설레 하셨고, 여러 가지 소품을 준비해 오셔서 바닷가 곁에서 아름다운 춤사위를 자랑하기도 하셨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집사님은 한 시간 거리인 집에서 교회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예배에 올라오셨다. 집사님은 예배와 성도의 교제에 대해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셨다. 이후 코로나 시기를 지나시면서 급속히 약해졌고, 지금은 자리에 누워 계신다. 그 사이 몇 차례 위험한 순간이 있었고, 지금은 말씀 한마디도 힘겨워하신다. 집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온 힘을 짜내듯 몇 마디 말씀을 외치셨다. 그저 말씀을 건네신 것 아니라 외치신 것이었다. "목사님, 보고 싶었어요." "장로님들 잘 계시지요?" 그렇게 힘을 주지 않으시면 발화(發話)되지 않으시기에 외쳐 반겨 말씀하신 것이다. 그날 심방은 외형적으로는 필자가 심방을 간 것이었지만, 되려 심방을 받은 날이었다.
돌아보면 '진심으로' '진심 어린' 삶으로, 목회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이 곁에 계셨다. 학교에서, 집에서 그리고 교회에서도 그랬다. 논어 술이편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말하지만, 진심 어린 길을 일러주신 부모님, 선생님, 장로님과 집사님, 권사님들이 지금도 한 말씀을 건네신다. '진심 어린, 진심으로 목회의 길을 갈 수 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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